현재 이 순간 …

“나는 지금 이 순간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을 생생히 느끼고 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많은 경험을 하고 탐구를 하고 도전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지만 … 그 많은 일들의 중심에는 투철한 자아의식안에서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음을 생생히 느끼며 또한 포괄적으로 의식하며 사는 것이라 생각을한다.

 

 

사람들은 ‘산이 좋아’ 산에가서 경치를 보고 감상하며 즐기고,

바다가 좋아 ‘바다에가서’ 물놀이를 하며 즐겁고 기쁜 시간을 보내고 나서

집에 돌아와서는 ‘아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하고 결말을 짓는다.

 

 

하지만, 그러함에도, 아직 추수려야 할 경험들이 남아있다.

산에 올라가서 경치를 보고, 물가에 가서 물놀이를 하고 나서 그냥 좋은 경험으로

끝나는 것이 결코 인간의 경험의 모든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높은 산에 올라가서 웅장한 자연을 감상하고, 파도치는 푸른 바닷물을 감상하는

본인의 경험 – 느낌과 감정이- 있으며 또한 그러한 경험을 느끼고 있는 자신을

의식하는 또 하나의 의식의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강아지가 즐겁게 뛰어노는 모습을 보며 미소를 짓는 자신이 있고, 동시에 강아지를 보고

미소를 띠고 있는 자신을 의식하는 또 다른 경험이 동시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결국이 우리는 ‘사물을 경험하면서 즐거워하는 자신’과 동시에 그 순간속에 머물며

즐거워하는 자신을 의식하는 또다른 의식의 경험이 있음을 경험상으로 이해할 수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세상에 살면서 아주 신비스럽고 경이로운 체험을 날마다

그리고 매순간마다 하면서 살아갈 수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는것이다.

이른 아침에 이슬에 흠뻑 젖은 풀잎과 꽃송이를 바라보며 풋풋하고 상큼한 경험을 하며

동시에 이렇게 흔하고 평범한 것에서도 경이로움을 느끼는 자신을 의식할 때에

그 순간의 경험은 훨씬 더 크게 중폭되는 것이다.

 

 

그래서 … 그렇게 <의식에 의식을 더하는 경험으로> 세상을 관망한다면,

일상의 삶이 매순간 신비롭고 경이로운 경험으로 다가오게 될 것이다.

 

 

한가한 공원 벤치에 앉아 있으면서 … 즐겁게 뛰어노는 아이들을 바라본다.                                                   

이리저리 소리를 지르며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모습이 정말로 살아있는 생동감 그 자체다.                          

그리고 나는 살포시 불어오는 바람을 피부로 느끼며 벤치에 몸을 기댄 채,                                                      

특정한 타겟없이 앞을 바라 보면서, 즐겁게 소리를 지르며 뛰어다니는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날쌘 동작들과 그 경쾌함을 의식하는 나를 의식한다 …

벤치에 앉아 있는 내가 있고 그 <나를>의식하는 또 하나의 의식이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나는 즐겁게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포함에서 … 그 주의를 관찰하고 의식하면서,

살아있는 나,  벤치에 앉아있는 나, 현재 이 순간의 나, 세상속에 있는 나를 관망하게 된다.

그러면서 나는 점점 <현재의 그 순간과 환경을 뛰어넘으며> … 세상속에서 살아서 움직이며

활동을 하고, 계획도 세우고, 꿈과 희망도 간직하며 살아가는 보편적인 인간으로 변하면서 …

이상하게도, <의식에 의식을 더하는 나>는 나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라

이제 <모든 사람>과 더불어 공동 운명을 함께 나누는 사람이 된다.                 

이제부터 나는 <나 혼자가 아니라>, 순식간에  <모든 사람>의 의식으로 변해서 , 모든 사람과 더불어

아주 포괄적으로 세상을 향하게 되고 … 이 세상의 선과 악, 긍정과 부정, 기쁨과 슬픔,

열정과 무료함 등의 경험들을 순전히 받아들이며 그러한 경험들을 체험하면서 헤쳐나아가야 할

많은 날들을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결국에 그 자유로운 생각과 상상의 날개는 어김없이

삶의 끝자락까지 비행하여 어김없이 모든 것을 포함하는 인생의 유한성 … 죽음의 종말에 다다르게된다.

그러면서, 현재 이 순간에, 이렇게 의미심장하게 그리고 생생히 존재하는 현실의 삶이지만,

<이게 전부 다가 아니고>, 삶과 죽음이 그렇게 한 통속임을 느껴지고 …

그리고 그러한 예측된 죽음앞에서 … 나는 현재 영문도 모르게 주어진 삶을 살아가는 것이고,

내 자신이 그렇게 중요하지도 않으면서 … 또한 누구에게 그렇게 필요한 존재도 아니며 … 그리고

세상살면서 그토록 중요한 일이 하나도 없음을 절실히 느끼게된다.

 

그러면서 …

매 순간 살아있음을 의식하며 살아가는 삶의 현실이 상상할 수도 없이 엄청나게 커다란 모습으로

다가오면서 … 현재 내가 벤치에 앉아있고  또 나중에 내마음대로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는 사실,

그 많고 많은 무궁무진한 일들이  새롭고 신비스럽게 느껴지기 시작한다 …

3 replies
  1. Lucy Park
    Lucy Park says:

    인간에게 죽음이 없었다면 삶의 의미나 삶의 유한성에 대한 철학은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고, 일상이 얼마나 소중하고 아름다운지도
    깨닫지 못했을 것입니다.
    죽음은 살아있는 자에게 남기는 마지막 교훈이며,
    잊을 수 없는 추억의 선물이란 말이 새삼 떠오릅니다.
    누구에게나 어김없이 찾아오는 죽음을 막연히
    회피하며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죽음 역시 삶의 과정 중
    하나로 인정하고 준비하면서 남은 삶을 후회없이 뜨겁게..
    일상이 주는 신비를 하루하루 소중히 누려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글입니다. 감사합니다.

  2. 강아지
    강아지 says:

    ” 바로 나자신이 모두요, 모두는 바로 나 하나이다.” 라는 뜻을 되새기면서 기초 수학 공식이 떠올랐다.
    1 + 1 = 1 “행동하는 나,” + ” 인식하는 나”
    1 = all “나 자신이 = 전체이다.”
    아무리 봐도 이해가 안되는 공식안에서 우리는 살고 있고, 나는 존재하는 것이다.
    우리의 삶 또한 이해되어지지 않고, 나 자신 또한 이해될 수 없는 존재이기에.
    죽음도, 삶도 모두 하나이다. 1 + 1 = all
    오늘 살아 있음이, 바로 내일 죽음이 될 수 있기에. 1 + 1 = 1
    아아, 오늘 내가 깨달은건,
    내일 죽는다 해도 나는 오늘을 또 사는것이다.
    나는 바로 모두 전체이니까. ??

    이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강아지 기초 산수 공부였습니다.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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