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자의 삶

 

그리스도 예수님의 마음을 간직하고 / 글. 폴 황 마티아

 

1974년 7월, 저는 백만장자를 꿈꾸며 기회의 땅이라 불리는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남가주에서 부동산 중개인 자격을 취득하여 사무실을 열었습니다. 당시 남가주에서는 부동산 붐이 일어 많은 이들이 부동산 매매에 뛰어들었습니다. 저는 ‘땅이야말로 백만장자가 되는 지름길이구나!’ 하며 땅을 숭배하기 시작했습니다. 1978년 12월부터 이듬해까지, 곧 백만장자가 되리라는 기대로 무리하게 빚을 내어 두 곳의 땅을 매입했습니다. 그러나 1980년 레이건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불황이 시작되었습니다.

1981년 8월, 어머니를 뵙기 위해 귀국하여 대구를 찾은 저는 성령 세미나에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그 세미나는 무리한 땅 투기 후 불경기를 만나 무척 고생하고 있던 저에게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태오 복음 6장의 “그러므로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차려입을까?’ 하며 걱정하지 마라. 이런 것들은 모두 다른 민족들이 애써 찾는 것이다.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필요함을 아신다.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마태 6, 31-33)는 말씀에서 많은 힘을 얻었습니다. 저는 ‘불경기에 땅을 팔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제가 단독으로 구입한 땅은 뒤로 미루시고 동업자가 있는 땅을 먼저 팔아 주시라고 하느님께 기도했습니다. 다행히 그 땅은 이윤을 남기고 팔렸고, 저 혼자 구입한 땅은 여러 조건이 미흡한 중동 구매상에게 팔았습니다. 그런데 결제 대금 예치 조건 이행 문제로 소송에 휘말려 큰 어려움을 겪게 되었습니다. 저는 모든 것을 하느님께 의탁했고, “원수를 사랑하여라”(마태 5,44)는 말씀을 되새기며 먼저 소송을 취하했습니다. 그러자 상대방도 소송을 취하했고, 그 땅도 팔게 되었습니다.

1983년에 월부금, 세금, 부채를 정리하고 남은 돈으로 조그만 세탁소를 열었습니다. 하느님의 도움으로 세탁소는 그럭저럭 운영되어 세 자녀의 대학 공부까지 마칠 수 있었습니다. 백만장자를 꿈꾸며 미국에 왔던 저는 이제 가족이 살 집과, 먹고 살 수 있고 아이들 공부 시킬 수 있는 사업체 하나만으로 더 바라는 것 없이 만족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부동산 중개업을 하며 겪은 무수한 체험과 성령 세미나를 통해 받은 은총으로 새로운 신앙인으로 거듭나게 되었습니다. 성당에서 열심히 봉사하며 성경을 좀 더 공부하고 싶었던 차에 본당에서 성서모임이 시작되어 성경 공부를 하게 되었고, 성경 공부를 하며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을 절절히 느꼈습니다.

1988년 사순절에 남가주 한인 성당에서 조 마오로 수녀님을 모시고 강의를 들었습니다. 마오로 수녀님은 요나서, 욥기, 마르코 복음 특강을 하셨는데, 성경에 대한 신자들의 갈증으로 500여 자리를 다 채울 정도였습니다. 저는 이 특강을 녹음하고 60분짜리 테이프 5개로 편집하여 남가주는 물론 미국 전 지역에 최소한의 비용으로 제공하였습니다. 그 후 수녀님께서는 한국 순교자 성당과 성 토마스 성당의 예비 말씀의 봉사자 두 그룹을 만드시고, 매주 북가주에서 비행기로 오가시며 창세기 그룹 공부를 시작하셨는데, 본당 신부님의 지명으로 저도 그 그룹에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조 마오로 수녀님은 한국 순교자 성당, 성 토마스 성당, 성 아그네스 성당, 밸리 성당에서 시편을 주제로 각 1회씩 강의하신 것을 8개의 테이프로 만들어 보급하는 등 남가주에 성경을 빨리 보급하고자 노력하셨습니다. 저는 그토록 애쓰시는 수녀님의 간곡한 부탁에 무엇을 하는지도 모르고 성서모임 남가주 지부 초대 대표 봉사자가 되었습니다. 연수를 할 피정 센터를 알아보거나 연수에 필요한 물품을 싣고 다녔고, 다른 본당에 특강을 가시는 수녀님과 동행하여 길을 안내했으며, 지도 수녀님을 성심껏 도와드렸습니다.

한편 저는 1981년부터 8년간 성령쇄신운동에서 봉사자로 일했는데, 40-50대 중년의 형제님들을 이끄는 것이 참 어려웠습니다. 반면 가톨릭성서모임은 이 형제님들의 참여가 활발히 이루어졌습니다. 성령 쇄신 세미나에서 성경 공부를 권장하면서도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하지 못했는데, 성경 그룹 공부는 세미나 참가자들에게 권할 좋은 성경 공부 방법이었습니다.

1993년에 남가주 지부 대표 봉사자를 그만 두었습니다. 저는 제가 해결할 수 없는 자녀에게 중요한 문제를 하느님께서 풀어 주시기를 청하며, 90마일(약 145㎞) 가량 떨어진 샌디에이고 한인 성당에 성경 공부를 보급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저는 그해 12월부터 창세기 두 그룹 봉사를 시작으로 1997년 7월까지 3년 7개월간 창세기 4그룹, 탈출기 2그룹, 마르코복음 2그룹, 요한복음 1그룹(총 9그룹)을 맡아 봉사했습니다.  좋으신 하느님께서는 걱정했던 자녀 문제 또한 해결해 주셨습니다.

이후 저는 평화의 모후 한인 성당에서 말씀의 봉사자 2명 중 자칭 대표 봉사자가 되었습니다. 대표직을 그만둔 2004년 초까지 본당 말씀의 봉사자는 7명으로 늘어났고, 2013년 3월말까지 공부한 176그룹 중 제가 21그룹을 맡아 봉사했습니다. 2004년 7월 저는 젊은 교우들이 대부분인 평화의 모후 한인 성당을 젊은 봉사자들에게 맡기고, 또다시 어바인 남쪽 실버타운(은퇴촌)인 라구나 우드에서 성경 공부를 시도하였습니다.  2007년 9월까지 지혜서, 잠언, 루카복음, 요한복음, 사도행전, 마태오복음 공부에 봉사했고, 연세가 많은 분들이 대상이라 그룹 공부보다는 이야기 성경을 주로 하였습니다.

1988년 가톨릭성서모임을 만나 긴 세월 말씀과 더불어 살아왔습니다. 가족들은 저에게 “뭐 그렇게까지 해야 합니까?” 하면서도 적극적으로 도와주었습니다. 돌아보면 사는 동안 굽이굽이 난관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때야말로 주님께서 우리를 부르시는 때라고 생각합니다. 만사가 형통하면 주님을 잊기 쉽고 난관이 닥치면 주님께 절절히 기도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시어 모든 이가 하느님 아버지께 영광을 드리게 하셨습니다(필리 2, 5-11 참조). 성서가족들이 우리가 매일 바라보는 십자고상 위에서 “내가 세상을 이겼다” (요한 16,33)고 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되새기며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2013년 5월)

1 reply
  1. Lucy Park
    Lucy Park says:

    늘 우리의 조그만 봉사가 다른 사람들의 눈에 따뜻한 모습으로 다가갑니다.
    주님의 선물로 받은 탤런트 그것을 통해 주님의 복음을 전하며 기쁘게 봉사하고
    생활하시는 봉사자들의 모습들이 넘 아름답습니다.
    사랑과 봉사로 언제나 하느님 뜻에 따르는 충실한 봉사자들께 감사를 드리며
    주님 안에서 쾌유와 평화를 누리시기를 기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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